말씀/나의설교

어린아이 같은 신앙(춘양시찰회 설교)

청담청수골 2012. 7. 7. 03:52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성경/마태복음18:3-4 , 찬송/ 565장, 569장

21세기 종교와 성령운동의 신학자인 하비콕스가 쓴 책중에 영성.음악.여성이란 책이 있습니다. 21세기를 간략하게 세단어로 말한다면 영성.음악.여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21세기는 영성 을 알아야하고 음악을 알아야 하고, 여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셋을 모르면 시대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세대이든 있어야 할 세 단어는 영성.인성.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성과 인성과 지성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영성이 없으면 생명력이 없고, 인성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지성이 없으면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되어 사회생활이 어렵게 됩니다. 이 세 가지가 골고루 갖추어 지면 좋겠습니다. 신대원에서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는 신학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성(인간의 됨됨이)을 강조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어린이는 누구든지 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이에게 있는 특성을 강조함으로 거듭남의 품성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특별히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3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것을 보면 얼마나 인성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좋은 신자가 될 수도 없고 행복한 신자가 될 수도 없다고 강조한 말씀입니다.

맹자는 "참된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 라고 했다. 워드워즈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다" 고 하였다. 그렇습니다. 참 신자가 되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열쇠는 3절에 "너희가 돌이켜"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어린아이의 마음을 몆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한 믿음을 가집니다. 어른들은 계산적이지만 어린이들은 무조건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티없이 깨끗하고 순박하고 순진합니다.

그러나 어른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이중적이고,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의 모습에서 순박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돌아갈 그때, 하나님을 올바로 믿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은 잘못할 때, 책망을 들으면 금방 돌이킬 줄 압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책망을 받으면 감정부터 상하고 자기 합리화 내지 자기변명에 급급합니다. 자기를 돌이켜 볼 줄 아는 것이 부족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믿음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를 의지하고, 학교를 다닐 때에도 선생님을 믿고 지식을 키워 나갑니다. 선생님을 믿지 않는 아이는 절대로 지적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의 독립성을 내 세우며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자기중심이 되면 남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에는 매사에 증명서가 필요하고 계약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부족해서 공증까지 받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불신의 벽이 두껍게 쌓여가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아이들처럼 순박한 믿음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지 못할 일들이 성경에 얼마나 많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도 그렇습니다. 철벽같은 여리고성의 무너짐도 그렇습니다. 사사들의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도 그렇습니다. 가나의 포도주 사건도 그렇습니다. 부활도 그렇습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왜 기적이 없습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너무 쉽게 믿습니다. 상대방을 의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괴범에게 끌려가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꾸며낸 동화 속의 이야기에서 슬피 울고 기뻐서 웃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그대로 정직하게 믿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성도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걱정이 된 목사님이 그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에 계십니까?”하고 대문을 드렸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사람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그 댁의 어린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는 말이“엄마가 없다고 하래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거짓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마을을 떠돌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먹음직스럽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기 때문에 자리를 펴자마자 떡은 다 팔렸습니다. 하지만 떡이 잘 팔릴수록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도 할머니는 낯선 동네에서 떡을 팔았습니다.

여느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떡을 한번 산 사람들은 다시 와서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의 손에 금화를 내밀었습니다. “이 금화만큼 떡을 달라는 거냐?” “아닙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화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습니다.”떡장수 할머니는 많은 유산과 사업장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금화가 든 떡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정직하고 순전한 믿음의 사람에게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지금도 기적을 이루시고자 합니다. 떡장수가 후계자를 찾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맡겨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우리는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사람 차별이 없습니다. 부잣집 아이나 가난한집 아이 / 지위가 높은 집 아이나 낮은 집 아이 / 교양이 있는 집 아이나 없는 집 아이/ 전혀 구별 없이/ 한데 어울려 뛰어 놉니다. 이것은 때 묻지 않은 참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십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오염되지 않은 참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독립 당시 정치가, 사상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청년 때, 이웃에 사는 어느 노인 댁을 방문한 후 집을 나설 때의 일입니다. 그 집에는 천정보다 낮은 들보가 하나 있었습니다. 노인은 프랭클린이 머리를 부딪힐까봐 주의를 주었습니다. “머리를 숙이세요.”그러나 그 들보를 미처 보지 못한 프랭클린은 저분이 왜 저러시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하기를“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적을 걸세.”라고 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말을 평생 동안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겸손을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우리들은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순종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말을 신뢰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어느 외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송구영신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말을 잘 몰랐기 때문에 사전을 펴 놓고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비록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열정 하나로 정성껏 준비한 노트를 보고 더듬거리며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이 밤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새 년이 옵니다. 새 년은 어떤 년일까요? 새 년을 기대하면서 드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새 년을 맞이했으니/ 이제 이년이나 저년이나 따지지 말고 /그저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년과 함께 살더라도/

잘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맞이한 새 년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형통하는 년을 사시기 바랍니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선교사가 “새 해”를 “새 년”으로 잘 못 말했지만 /성도들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비록 웃음은 나왔지만/ 꾹 참고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생각과 말과 행위로 잘 못 표현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멘으로 기쁘게 수용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참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이 살아 있어서 운동력 있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기적의 말씀이 됩니다. 그렇게 살 때 / 하나님은 올 일 년 동안/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길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넷째. 우리는 돌이켜 어린이처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엄마의 품을 찾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서울 때에도 가장 먼저 엄마를 찾아/ 품에 안깁니다. 어린아이는 슬플 때에도 엄마의 품을 찾습니다. 추워도 엄마를 찾습니다. 배가 교과도 엄마를 찾습니다.

이처럼 어린아이는/ 어떤 경우라도 엄마의 품을 찾습니다. 엄마의 품이면/ 모든 것을 잊고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어린아이의 안식처는/ 오직 어머니의 품 속입니다. 우리는 두려울 때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슬플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괴로울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에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2012년 춘양시찰회의 총대로 섬기라고 교회에서 파송한 저희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품성을 닮아 “섬김의 천사”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