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세상(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박영근 교수의 <말 통하는 세상 살고 싶다>에서 상대와 소통하려면
남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흔히 고부간에 갈등에서 “내가 썩는 건 아무도 몰라 누가 알겠어” 하면서 속상해한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해서 얻은 건데! 어떻게 해서 배운 건 데! 하면서 상대에게 다가 설려고 하지 않는다.
소통하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하라.
아버지가 학교 다니는 자녀들에게 하는말 중에
1.꾸중-이녀석 버릇없네.
2.비난-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네
3. 비교-옆집 철수 반만큼이나 해보라.
4. 우리 어렸을 때에는-나무하면서 컸어! 지금은 공부만 하는데~학원이 어디있어, 과외 택도없지~
5. 충고-공부는 다 때가 있는거야! 이러한 말은 이해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라고 생각하면 소통이 안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소통하려면 공감하라/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라.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하라 사춘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 사람을 흐믈흐믈하게 만들려면 공감해라
예)아내가 아파서 “여보 좀 아파서 나좀 도와줘요” 하면 나도 아픈데, 감기 아니야!/또 어디아파/병원 가봤어/ 이런 말은 아내의 마음을 흐믓하게 못한다. 만져주면서 아퍼서 어떻게 설거지 그냥줘요 내가 할께요, 주물러 주면서 여기도 아프겠네~ 관심을 가지면 소통 된다.
오늘 본문 말씀중 인정한다는 말의 뜻은 ‘주의를 주라’ ‘시인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네 모든 행위와 의지를 지배하는 자를 무조건 하나님을 시인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시인한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말씀은 입으로만 시인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디도서 1: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한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한다 함은 그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인함을 전제해야 합니다. 자신을 인정해 버리면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이 가리워집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마태복음 10장24절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시인한다’ 여기에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의미와 또는 여호와를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교제한다는 넓은 의미(포괄적 의미)가 있습니다.
창6:6-7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Tam하셨습니다. 이어서 창8: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악한 인간을 인정하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현대사회는 서로 이기려는 경쟁시대 윈윈시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시대에 주님은 우리를 인정하시고 죄로 막힌 세상 소통 안되는 세상을 십자가 사랑으로 소통시키셨다.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교제한다는 말에 집중하여 생각해보면 요한사도의 말중에 요한1서6-7절에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생각납니다. 사랑으로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시면서도 용서하시고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유봉준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보면 보이나니 이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다르다” 라는 말을 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고 주님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형제의 아픔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같은 사랑이 있어야 형제의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의 14:12 말씀중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이웃의 고통을 이웃의 사정을 다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즐거움을 고통을 모두 나눌 수는 없다. 잠14장21절에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가난한자의 마음을 알기는커녕 업신여긴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 때문에 이웃에게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가난의 아픔 질병의 아픔을 다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악성을 아시고 고통을 아십니다. 인간을 죄를 인정하시면서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고통을 우리의 질고를 십자가 사랑으로 지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은 우리의 삶을 질타하는 말이 있습니다. 김삼환목사님 총회장취임식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한 사회학자의 말을 빌려 “기독인이 10%을 이상을 차지한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기독인에게 있다” 고 말하며 한국기독인의 바르지 못한 삶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교회일치의 문제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를 품지 못하고 있다.
18대 국회의원이 299명중 114명이나 됩니다. 40%나 됩니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였습니다. 예수믿는 정치인이라 다르지 않다고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복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국회의원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잘해야 국민들에게 복이 흘러간다“고 하였습니다. 서로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품지 못합니다.
또한 교회가 세상과 차별만을 주장하지 세상을 품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학자말에 “아버지보다 시대를 닮은다는 말이 있다” 바울사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세상은 복잡합니다. 사회구조가 복잡합니다. 문화가 서로 다릅니다. 배움이 다릅니다.
환경이 다릅니다. 성장이 다릅니다. 교회가 어느 선까지 인정하며 어떤것은 거부할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행동을 거부하면서 그들을 인정하면서 사랑을 배ㅔ풀어야합니다.
세상속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고 복종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듯이 사랑하며 이와같이 이웃도 사랑하면서 사랑을 베풀면서 공감해 주면서 이해해주면서 사랑을 베풀고 실천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회가 될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복종하고 사랑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통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과도 주님의 사랑으로 이해하면서 베풀면 통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길을 지도하신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은 곧 모든 장래일이나 현재일이나 다 하나님께 맡기도 그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길에서 순종하므로 그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은 “그가 네 길을 지시하여 주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제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1장8-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출13장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기축년 새해에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합시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말씀에 따라 삽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과 막힌 하나님의 관계를 열어갑시다. 소통합시다. 그리하면 모든 길이 열릴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합시다. 막혀있는 이웃과 소통합시다. 이웃을 인정하며 관심을 갖고 들어주며 이해하며 공감하며 통합시다.
이 산지를 하나님의 동산으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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